6월에 쓸 월급을 5월 29일 금요일에 받았고 그때부터 내 예산의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었다. 아직 일주일도 안된 일이지만 그날부터 나의 월급맞이 식물 들이기가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생긴 화분이 몇 개냐면 한 개, 두 개, 세 개, ... 다섯 개... 여섯 개다(일주일도 안됐는데!). 가장 최근에 데려온 식물/화분부터 시작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새로 생긴 식물/화분을 돌아본다.
6. 건대입구역에서 분양받은 핑크 싱고니움.
나는 식물을 기르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트위터에서 만난다. 트위터에는 식물계정 군집이 있다. 그들은 단단하고 넓은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그 계정들은 식물계정에서는 식물 얘기만 해야 한다는 폐쇄적인 규칙이 있다. 대신 식물 얘기를 위주로 하는 식물계정이라면 누구든지 어렵지 않게 맞팔로우 관계가 될 수 있는 개방성도 있다.
식물계정의 타임라인은 유행하는 식물의 입고 소식과 사용자들이 키우는 식물 사진, 그리고 자신이 키우는 식물을 팔거나 무료로 나누고자 하는 트윗들이 많이 올라온다. 그곳은 활발한 시장, 혹은 벼룩시장 같다.
내가 핑크 싱고니움을 가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던 중에 맞팔 관계인 한 계정이 핑크 싱고니움을 당근마켓에 판매하려 한다는 트윗을 올렸다. 나는 어제 퇴근 후 지하철을 타고 건대입구역에 가서 그에게 핑크 싱고니움을 분양받았다. 소품이라고 할 만한 크기였지만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핑크 싱고니움은 어젯밤 늦게 우리집에 왔기 때문에 그가 우리집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5. 택배로 나눔받은 퍼플 프린스.
맞팔로우 관계인 한 계정이 퍼플 프린스 나눔 공지를 올려 재빠르게 멘션을 달았다. 식물을 ‘구매’할 때는 내 취향에 딱 맞는지, 그러한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면서 식물을 고르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나눔을 받는 건 좀 다른데, 나눔을 해주는 이가 식물을 포장하고 택배 보내는 수고를 감수하면서까지 내게 그것을 보내주는 것이 나는 왠지 좋다. 나는 그러한 식의 만남이 기쁘고, 나눔 소식을 올려주는 사람들이 좋고, 나도 식물을 오랫동안 잘 키워서 사람들에게 나눔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퍼플 프린스는 무사히 택배로 도착했지만 화분에 심어준 지 이틀이 지난 지금도 이파리가 축 늘어져 있다. 그는 과연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까? 택배상자 안의, 신문지로 둘러싸인 테이크아웃 커피컵 안의, 물티슈로 둘러싸여 있는, 수태 안에서 꺼낸 퍼플 프린스를 보자마자 나는 그 식물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퍼플 프린스를 검색해서 찾아봤을 때랑은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그가 제발 건강해주기를 바란다.
4. 종로꽃시장의 칼라데아 인시그니스(부부초).
이거 얼마예요? <5천원이야.> 옆의 유칼립투스는요? <6천원.> 아, 그럼 이걸로 할게요(돈을 내밀었다). <얼마 줬어? 이거 7천원인데?> 네? 아까 5천원이라고 하셨는데요? <무슨 소리야 이거 7천원이야.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그냥 6천원에 가져가.>
상인과 나의 대화. 그가 정말 7천원이라고 대답했는데 내가 5천원으로 잘못 들은 건지, 그가 5천원이라고 말해놓고 상술을 부리는 것인지 그 사실은 영원히 명명백백히 가릴 수 없을 것이다...
오프라인 식물 구매의 단점은 순간의 화려함에 끌려 식물을 구매하게 된다는 것이다. 칼라데아 인시그니스는 아주 화려한 잎의 모양, 무늬를 자랑한다. 막상 집에 데려와 이삼일간 바라보니 정이 가지 않았다. 잎 뒷면의 빨간 색깔도 무섭게 느껴졌다. 이 식물은 토요일에 처분할 예정이다...
3. Y씨가 나눠준 싱고니움. 5월 중순의 어느 주말 Y씨가 내게 카톡을 보내 싱고니움 뿌리찢기를 시도해보려 하는데 분양받을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있다고 말했다. Y씨는 공부를 한 후에 뿌리찢기에 성공하고 나눈 촉들이 새로운 화분에 무사히 자리잡고 안정을 찾은 후에야 내게 싱고니움 화분을 가져다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전 Y씨와 내가 편의점에 가서 1000원짜리 젤리를 사면서 이걸 같이 나눠먹자고 했는데 그때 Y씨한테 500원이 없어서 그냥 내가 샀다. 그러자 Y씨는 그럼 싱고니움 분양비를 따로 받지 않겠다고 했다. 싱고니움은 500원을 주고 분양받기에는 너무 정성스레 다듬어져 있었다. 싱고니움에게 이름을 붙여줘야 하는데 Y씨의 이름의 흔적이 들어가 있게 지어볼까 한다.
2. 노가든의 베고니아 마큘라타.
1.노가든의 필로덴드론 버킨.
월급을 받은 다음날 노가든에 가서 데려온 아이들. 노가든은 특이하고 예쁜 식물들을 좋은 컨디션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가격도 그러한 큐레이션에 합당한 몫으로 매겨져 있다. 월급을 받은 직후였기 때문에, 또 지난달 재난지원금 덕에 신용카드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가져가도 된다고 생각하며 식물 둘과 그들을 분갈이해줄 화분 둘을 샀다.
아직 6월 4일이지만 데려오고 싶은 식물은 더더더 많다. 어떡하면 좋지? 왜 아직도 6월 4일밖에 안되었지? 이러다가는 매일매일 식물을 데려오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상황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오늘도 워터코인을 나눔해준다는 트윗에 멘션을 달았고 그에게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내일이나 모레쯤 배송비를 청구하는 디엠이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기쁜 맘으로 또 배송비를 보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