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일기

식물 버리기


최근에 데려온 식물들은 다음과 같다.

필로덴드론 버킨. 베고니아 마큘라타. 칼라데아 인시그니스(왼쪽 하단부터 시계방향).

필로덴드론 버킨은 키우기 무난한 식물이다. 내가 예쁜 버킨 사진을 올리자 버킨을 키우고 있는 다른 사람이 자기 버킨은 왜 이렇게 건강하지 않은지 걱정하며 사진을 찍어 올렸다. 햇빛을 많이 볼수록 잎의 줄무늬가 진해진다.

베고니아 마큘라타 역시 키우기 무난한 식물이다. 근경성 베고니아는 까다롭지만 목성 베고니아는 순하다고 한다. 잎이 날개처럼 펼쳐져 있고 점박이 무늬가 화려하다. 습한 것을 좋아한다.

칼라데아 역시 까다로운 식물이지만 인시그니스 품종은 괜찮다고 했다. 밤에는 수분을 잃지 않기 위해 잎을 바짝 세우고 낮에는 잎을 가로로 눕힌다. 습한 것을 좋아한다. 추운 것을 싫어한다.

보일러실을 겸하는 베란다가 좁아졌다. 식물과 화분이 늘었기 때문이다. 쓰지 않는데 묵혀두고만 있던 다이소 빨래건조대, 조립식 책상, 행거를 처분하려고 각각 1000원, 4000원, 2000원을 내고 폐기물 수거를 신청했다.

식물을 놓을 선반을 사야 한다. 부담스러워서 혼자 살게 된 지 몇 년이 지났어도 사지 않던 가구들을 식물 때문에 들이고 있다. 식물을 자꾸 데려오는 건 나를 위해서니까 가구를 들이는 것도 결국 나를 위한 일이 된다.

식물은 아름답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열광이 유지될지 의심스럽다. 나는 화르르 불타올랐다가 금세 관심을 접곤 한다. 여러 가지 말들이 떠오른다.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꽉 잡으세요.> <집에 식물을 두고 가꾸고 그 잎을 만지고 하는 건 숲에 가서 잎을 만지는 거랑 같은 치유 효과를 준대.>

오늘 아침에는 몸이 너무 무거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전 반차를 썼다. 원래 발을 두는 자리에 머리를 대고 누워 베란다에 있는 식물들을 바라봤다. 언제까지 식물들을 좋아할까? 저것들도 다 처분해야 할 대상이 되진 않을까? 그럼 당근마켓에 하나에 만 원씩 해서 내놓아야 할까? 그러면서도 회사에 둔 싱고니움이 보고 싶었다. 싱고니움은 동료 Y가 뿌리 찢기를 해서 나눠줬다. Y는 따로 분양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화분값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했다. 카페에 들렀을 때 커피를 한 잔 사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팀원들이 아무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카페에서 우르르 나가버려서 못 사줬다.

나는 지금 마음 기댈 곳으로 식물을 꽉 붙잡고 있다. 꽉 붙잡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런데 화원에서 다 키워놓은 건강한 식물들을 데려와서 모아놓고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리며 자랑하는 자신이 싫다. 내가 키운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키웠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려면 긴 시간을 버텨야 한다. 인생은 버텨야 하는 것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한다. 더 좋은 집에 가려면 돈을 모아야 한다. 회사를 차리려고 해도 돈을 모아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잠시 회사를 쉬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회사에서 버텨야 한다. 식물을 더 행복하게 키우기 위해서도 버텨야 한다. 이 말이 말이 되는 말인지 모르겠다. 요즘 내 사고 회로는 이런 단순한 경로로 고정되어버렸다.

최근에 화분 하나를 정리했다. 당근마켓에 싸게 내놓아서 누군가가 가져갔다. 화원에서 덤으로 받은 제라니카 산세베리아였다. 분갈이까지 해준 후였다. 같이 온 제라늄 화분도 내놓았는데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오늘 누군가 구매하겠노라고 연락이 왔다. 제라늄 화분이 나가지 않는 동안 나는 저걸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계속 생각했다. 흙은 화단에 버리고 식물은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릴까? 바깥 아무 데다가 심어줄까? 지난 주말 동안 새로 들인 화분들은 너무 화려한 것들이었다. 이미 화원에 있을 때부터 예쁘고 건강한 아이들이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돈을 줬으니까 누리면 되는 걸까? Y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고 예쁜 식물을 받아도 되는 걸까?

점점 더 어지러워지는 베란다, 쌓여가는 화분, 빛이 부족한 집, 식물들을 온전히 편안해하지도 않는 나. 오늘 쌀을 보관해둔 통에서 쌀벌레가 나왔다. 쌀을 아주 오래오래 씻어 밥을 했다. 식물들에게서도 언젠가 벌레가 나올 수도 있다. 공포스럽다. 벌레가 심하게 끓으면 살충제를 몇 번 뿌려줄 것이고 그래도 처치가 안 되면 화분을 내놓아 버려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동시에, 식물이 하나도 없는 집을 이제 상상할 수가 없다.

회사에 식물을 두는 게 싫어서 Y가 준 싱고니움을 집에 바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하루 회사에 두었더니 시시때때로 잎을 만지게 되었고 햇볕을 보여주기 위해 바깥에 내주게 되었다. 무언가를 꽉 붙잡으라는 말. 계속 머릿속에서 맴맴 도는데 왜 그 말 자체가 그렇게 괴롭게 기억되는지 그 말도 역시 누군가를 위로해주기 위한 말인 것 같은데 왜 그런지. 무거운 마음이 아주 거대한 쇳덩이가 되어서 바다 밑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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