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신문 다섯 부를 챙겨 달라고 했다. 풀피리는 2월 14일부터 15, 16, 17, 18... 오일치를 챙겼다. 종이 가방에 다섯 부를 넣어 걷고 있었다. 갑자기 비가 내렸다. 순식간에 신문이 납작해졌다. 모서리는 몇 군데 숨이 죽은 듯 말려 들어갔다. 풀피리는 우산이 없었기 때문에 비를 피하지 않고 신문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시계도 없고, 스마트 기기도 없었다.
셋만 세자.
5
4
3
2
1
풀피리는 셋을 세기로 하고, 속으로 오초를 셌다. 풀피리는 벌떡 일어나, 괘종 앞 미모사 근처로 갔다. 친구는 없었고, 대신 유언장이 있었다.
/*유언장*/
풀피리에게
안녕, 기다리다가 편지 남겨
우산 안 가져왔어 비 맞다가 유언장 쓴다
너에게 주려고 왓소니아를 데려왔는데, (얘는 구름이끼거든?)
비를 많이 맞아서 약해질 것 같아
얘 두고 나 갈게
총총
/*유언장*/
풀피리는 필적을 보고 확신했다. 친구가 남긴 게 틀림없어. 긴 산책을 하러 떠난거야. 풀피리는 친구가 왜 편지가 아니라 유언장을 썼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친구 대신 왓소니아가 곁에 있다. 왓소니아가 무슨 식물인지 검색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검색할 도구가 없다.
“총총”
왓소니아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안녕?’ 풀피리가 속으로 말했다. “안녕안녕” 왓소니아가 곧장 답했다. ‘넌 내 목소리가 들리니?’ “들려들려” 이번엔 왓소니아가 골짜기가 떠나갈 듯이 크게 소리쳤다. (이러면 안 들리겠지) “들려들려” 바람이 불었다. 왓소니아가 바람에 흔들리는데 그 모습이 크게 웃는 것 같았다. (와! 신기해!) 왓소니아는 이번엔 답하지 않았다.
풀피리는 왓소니아를 신문지로 감싸기로 했다. 왓소니아는 아주 무거웠다. 물에 젖은 신문지는 무게가 십 톤 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풀피리는 왓소니아와 동행하기로 했다. 풀피리는 몰랐다. 풀피리 등 뒤에 왓소니아 잎 몇 개가 붙어 있었고, 신문지도 붙어 있었다. 친구는 잊었다. 하지만 친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친구는 총총 했으니깐. 건강해진 친구는 지금보다 더 좋은 곳으로 떠났을 거야. 또 다시 바람이 불었다. 신문지가 왓소니아를 감쌌다. 풀피리는 바람에 뿌리가 뽑힐 것 같았지만 조금씩 참기로 했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다. 집은 아주 멀리 있었지만 아주 멀리 있진 않았다. 풀피리 품엔 왓소니아와 유언장이 있다. 글자로 남은 친구는 구름이끼를 두고 사라졌다. 친구는 풀피리에게 유언으로 왓소니아를 남긴 걸까? 아니 풀피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유언장을 펼치면 언제든 친구와 함께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니 바람도 무섭지 않았고, 우산 없이도 우산이 있는 것 같았고 물에 불은 신문지도 곁을 감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