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푸리와 늪지의 노래

글 · 슬슬픔

푸푸리는 무성한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푸푸리를 담은 얇은 플라스틱 포트 화분으로부터 푸푸리를 꺼낼 수가 없었다. 푸푸리의 뿌리가 포트를 거의 꽉 채우고 있었다. 포트와 한몸이 된 것처럼 빠지지 않는 푸푸리.

푸푸리의 포트 옆구리에 옅지만 길게 갈라진 틈이 있었다.

<푸푸리의 뿌리가 강한 힘으로 자라나면서 포트의 옆구리가 갈라졌나봐.> 작은 미피가 말했다.

우리는 가위를 가져와 포트를 갈랐다. 푸푸리의 뿌리는 압착된 밀짚처럼 낡고 늙어보였다. 목재를 얇게 펴서 만든 테이블. 자연재료를 압착한 듯한 무늬를 모방한 바닥재. 압화와 압엽.

밤이 되자 작은 미피는 침대 베개맡에 놓은 푹신푹신한 강아지 인형의 봉제실 틈으로 들어가 나와 함께 누웠다.

보일러 컨트롤러의 작은 점에서 나오고 있는 푸른 불빛이 푸푸리에게 비쳤다. 침대 왼쪽 벽에 꼬불꼬불한 푸푸리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미피와 나는 푸푸리의 그늘 아래에서 눈을 감았다. 뿌리가 자라나는 소리가 들렸다. 서로를 압박하고 있던 뿌리들이 물컵 속에서 물을 흡수하면서 통통하게 부풀어 올랐다.

물을 흡수하는 푸푸리는 점점 더 통통하고 통통해졌다.

집에 있던 가장 큰 유리컵을 사용했는데도 푸푸리에게는 부족했다.

푸푸리는 하나의 늪지로 자라났다.

몇 년 후 작은 미피와 나는 가끔 푸푸리의 산맥을 방문했다. 푸푸리의 꼬불꼬불한 팔들 아래로 축축한 흙과 돌멩이와 웅덩이 들이 있었다. 물속에 잠긴 푸푸리의 뿌리의 일부가 얕은 물 위로 드러나 보이기도 했다. 푸푸리를 방문하는 날이면 우리는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보라색 장화를 신었다.

겨드랑이 아래까지 오는 키 큰 갈대풀들이 팔을 찔렀다. 코를 간지럽게 하는 초록색의 냄새가 풍겼다. 물속을 들여다봤을 때는 내가 무서워하는 얼굴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수면 아래에 잠겨 있었다. 얼굴들은 물의 파동이 일고 가라앉음에 따라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보이다가 빳빳이 펴져보이곤 했다.

그런 기억들이 푸푸리의 뿌리에 얽혀 있었기 때문에 나는 푸푸리를 개인적인 공간으로 생각했지만 늪지라는 하나의 공간으로 자라난 푸푸리는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될 수 없었다. 푸푸리의 늪지에서는 가끔 그곳을 탐험하거나 산책하는 다른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푸푸리를 우리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피는 다른 이들이 보이면 몸을 부르르 떤 후에 내 어깨 밑으로 숨었다.

나는 가끔은 미피 없이 푸푸리를 방문했다. 그럴 때면 물 밑에 얕게 잠수해 있는 무서운 얼굴들을 꾹꾹 밟으며 걸었다. 얼굴들은 징검다리처럼 늪지의 이편에서 저편까지 지름길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힘껏 밟아대며 늪지의 여러 곳을 오갔다. 처음 만나는 벌레들. 처음 만나는 식물들. 처음 만나는 동물들. 푸푸리의 늪지에서 자라나는 또다른 아기 푸푸리. 투명한 물 위로 들여다본 아기 푸푸리의 뿌리는 새끼 손가락 한 마디만 했다. 푸푸리가 이 아기 푸푸리를 낳은 것일까? 푸푸리라는 늪지에서 자라났다고 해서 작은 푸푸리를 푸푸리의 아기라고 해도 될까? 나는 마치 나의 뿌리처럼 물 밑에 잠겨 있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그 얼굴들을 꾹꾹 밟으면서 푸푸리의 늪지에서 돌아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