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e Little Blue


쿵쿵 쾅쿵 콩 콰쾅!

바위가 가득한 이 계곡에도 공룡들이 산다. 험준한 바위 사이를 뛰어다니는 이 공룡들은 파랑기웃사우루스다. 파랑기웃사우루스는 원래 국화꽃이 잔뜩 피어있던 숲에 살던 콩콩슬사우루스의 아종이다. 키가 3m 남짓되는 파랑기웃사우루스들은 굵직한 갈고리 발톱과 강한 다리, 긴 꼬리를 가지고 있다. 파랑기웃사우루스의 갈고리 발톱은 험준한 계곡을 뛰어다닐 때도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해주고 긴 꼬리는 파랑기웃사우르스가 빠른 속도로 계곡을 뛰어다닐 때 균형을 잃지 않게 해준다. 파랑기웃사우루스는 물보라가 이는 계곡 근처에 있는 침엽수의 잎을 먹거나 산딸기를 먹으며 살아간다.

파랑기웃사우루스의 군락 근처에는 침엽수들이 많이 산다. 고도가 높은 마루치마계곡 주변의 숲에는 소나무, 전나무, 삼나무, 잣나무, 은행나무, 낙엽송, 세쿼이아 같은 잎이 가느다랗고 멋진 나무들이 모여있다. 계곡물이 폭포치고 흩어지며 빽빽한 나무들이 우거져서 물을 가둔다. 물보라와 물안개, 낮은 구름이 모여 하얗고 파란 안개의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마루치마계곡의 북동쪽에 작은 나무들이 모여 사는 터가 있다. 여기사는 침엽수들은 키가 작을 뿐 아니라 잎도 보들보들 부드럽다. 흰 빛과 푸른 빛을 가진 이 작은 나무들은 서기 2020년에는 비단삼나무, 블루버드 삼나무, 스노우화백, 서리화백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리틀솜"은 이 군락에 사는 키 30cm의 비단삼나무다. 리틀솜이 첫 잎을 내고 나서 2번의 여름이 지나갔다. 리틀솜은 겨울도 잘 버틸 수 있지만 여름을 더 좋아한다. 리틀솜이 뿌리내린 자리는 빛이 잘 안 들기 때문이다. 리틀솜은 느리게 자란다. 리틀솜의 형제 중에는 벌써 키가 50cm가 된 자도 있다. 그의 선조들은 최대 3m까지 자란다. 해가 비쳐 들어오는 방향으로 자란 리틀솜은 살짝 휜 수형을 가지고 있지만 문제는 아니다. 물안개가 자주 끼는 이 숲에 있는 동안 리틀솜은 목마를 일이 없다. 그저 리틀솜은 시원한듯 따뜻한 희고 푸른 잎들을 조금씩 길러갈 뿐이다.

콩콩 꽝콩 꽁 꽈광!

파랑기웃사우루스 "사음"이 온다. 사음은 태어나서 네 번째 겨울을 맞는 파랑기웃사우루스이다. 파랑기웃사우루스의 수명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어느 노래에 전해지길 어느 파랑기웃사우루스는 80번째 겨울을 만났다고 한다. 파랑기웃사우루스들은 긴 수명 때문인지 느리게 자란다. 사음은 60cm 정도의 키를 갖고 있다. 사음은 자매들과 계곡을 뛰어다닌다. 자갈이 튀고 진흙이 발톱에 묻는다. 뿍씬한 흙이 발에 묻어난다. 흙발로 바위와 작은 시냇물을 지나며 발을 닦아내고 뛰어오르며 물방울을 튀겨보기도 한다. 달리면서 눈 앞의 잎을 낚아채기도 하고 기다란 나뭇가지를 주워서 자매들과 잡아당기며 줄다리기를 해보기도 한다. 차가운 물안개와 서리가 낀 바위들.

사음은 그의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는다. 너무 멀리가지 않도록 할 것. 소리가 들리고 냄새가 맡아지는 곳까지만 나갈 것. 하지만 사음은 독립적이다. 사음은 그의 둥지에서 멀리 나간다. 자매들과 함께 계곡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사음은 비단삼나무 숲에 도착했다. 어른들과 키가 비슷한 작은 삼나무 사이를 뛰다니던 사음은 리틀솜을 발견한다. 작은 리틀솜은 파랗지만 따뜻하다. 삼나무의 희미한 향기가 올라온다. 사음은 리틀솜의 잎을 뜯어 씹어본다. 잎은 솔잎과 다르게 무척 부드럽다.

어슴푸레하고 작은 파랑. 삼나무향이 입 안 가득 피어오른다. 미래의 계곡에는 사음처럼 깃털이 가득하지만 훨씬 가벼운 동물들이 숲을 날아다닐 것이다. 파랑새들이 삼나무 숲을 날아다닐지도 모른다. 비단삼나무를 입에 머금은 채로 사음은 그 자리에 멈춰 리틀솜 옆에 앉아보았다. 숲이 사음과 리틀솜을 내려다보았다.

자매들이 뛰어다니다가 어느새 멀어지기 시작했다. 킁킁. 다음에 또 올게. 사음은 얼른 벌떡 일어나 자매들을 따라갔다. 물안개 속으로 어린 파랑기웃사우루스 자매들의 발소리와 비단삼나무향이 퍼져나갔다.